공지사항
제목 라인 대구의 '청라언덕과 김광석 거리'
작성자 라인 박건삼 날짜 라인 2016-05-19 조회수 라인 3788

한국의 걷고 싶은 거리 100선 -(1)



파리엔 몽마르뜨 언덕, 대구엔 대중가수 이름을 딴 유일한 길


청춘들의 명소, 대구 방천시장의 ‘김광석 거리’


 


-대구 하면 떠오르는 게 뭘까? 겨울엔 춥고 여름엔 폭염의 날씨 그리고 사과.


그러나 이미 옛날이야기가 됐다. 강릉이 더 춥고 밀양이 더 덥고 사과는 대구를 떠난지가 이미 오래다. 맵고 뜨거운 ‘따로국밥’과 ‘막창’이 겨우 명맥을 잇고 있지만 젊은이의 입맛을 사로잡진 못한다. 4,19보다 먼저 이승만 독재 정권에 항거한 고등학교학생들의 1960년 2,28 민주항쟁을 얘기 하지만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오히려 악몽 같은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사건을 떠 올린다. 그런데 요즘 ‘청라 언덕’과 함께 대구의 한 골목 거리가 젊은이들 사이에 회자되어 대한민국 명소가 되고 있다. 대한민국 아니 아마 세계 최초의 대중가요 가수의 이름을 딴 거리가 명소가 되어 주말이면 만 여 명의 젊은이들이 전국 각지에서 이 거리를 찾아온다. 이 거리가 가객 김광석을 그리고 기리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거리’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젊은이들은 물론 5060에서 심지어 7080에게까지도 널리 애창되는 이 노래는 영원한 가객 김광석의 부른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다. 그가 부른 노래는 애절한 그리움이 녹아 있다. 그리고 달콤한 사랑노래 보다도 1980년대, 그 엄혹(嚴酷)한 시대를 겪어 온 삶 속에 포크와 민중가요의 건강함과 따뜻함이 배어 있다.


“문명이 발달해 갈수록 오히려 사람들이 많이 다치고 있어요. 그 상처는 누군가 반드시 보듬어 안아야만 해요. 제 노래가 힘겨운 삶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비상구가 되었으면 해요.” 그가 죽기 한 해전인 1995년 <샘터>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의 말처럼 그의 노래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많은 청춘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그가 떠난 지금도 그의 노래는 그리움으로 메아리치고 있다. 그의 출생지인 대구 중구 대봉동에 위치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 이젠 한국의 명소가 되어가고 있다.


김광석은 1964년 1월 22일 대구시 대봉동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방천시장에서 전파사를 했다. 대구와의 인연이 그리 깊지는 않다. 다섯 살 때까지만 이 곳에서 살았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현재는 종로구 관할)으로 이사 갔다. 길이 조성된 골목은 어린 시절 그가 친구들과 뛰어놀던 곳이다. 그는 서울에서 중학교 시절에는 관현악부, 고등학교 시절에는 합창부로 활동하면서 음악적 감수성을 키워갔으며 대학 진학 후 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1988년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결성한 동물원의 1집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89년 솔로로 데뷔하여 첫 음반을 내놓았고 ‘거리에서’, ‘변해가네’, ‘사랑했지만’, ‘서른 즈음에’, ‘이등병의 편지’ 등 애잔하면서도 서정적인 가사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국 모던 포크의 계승자로서 각광받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펼쳐나가던 그는 1996년 1월 6일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수줍은 듯한 미소가 친근감과 묘한 매력을 풍겼고, 평소 술과 친구를 좋아했던 포크가수 김광석, 그는 죽어서 포크가수의 신화가 되었다. 그는 사실 스타가 될 만한 화려한 외모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TV 등 주류 무대에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발표하는 앨범마다 소리 없이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20~30만장이 팔려나간 언더그라운드 최고 인기가수였다. 한 때 ‘너무 우울하다’ 이유로 방송 금지되었던 ‘이등병의 편지’는 1980년대 이후에 군대에 다녀온 젊은 청춘은 한번쯤은 노래했던 그의 대표곡이 되었다. 그는 80년대 운동권 출신으로 기성 가요계에 진출하여 수줍은 미소, 따뜻한 그러면서도 폭발적인 저항의 목소리로 90년대 한국 가요계를 평정한 한국 최고의 포크 가수로 불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은 2009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가 상업적으로 침체된 전통시장에 문화의 숨결을 불어넣어 시장을 문화체험 공간이자 일상의 관광지로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8년부터 추진한 사업이었다. 정식 명칭은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으로 시행된 ‘문전성시 프로젝트’ 의 일환으로 출발하였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의 명칭은 김광석이 1993년과 1995년에 각각 발표한 음반 ‘다시 부르기’에서 착안하여 지어졌으며 ‘그리기’는 김광석을 그리워하다(miss)와 그린다(draw)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에는 주말 평균 5~6천명에서 많게는 만여 명 여행객들이 전국에서 몰려오고 있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은 이제 명실상부한 대구를 대표하는 전국적인 명소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는 1월 22일에 태어나 그가 태어난 1월 6일에 세상을 떠났다. 올해는 그의 탄생 52주년이자 동시에 20주기를 맞는 해이다.


현재 김광석 거리는 화교소학교에서 수성교 방향으로 20여분 거리에 위치한 방천시장내에 조성되어 있다. 대구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 옆 350m 길이 쯤 되는 이 아기자기한 길은 꽉 들어찬 벽화로 단번에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접근하는 방법은 택시로 방천시장(김광석 길)로 가거나 대중교통편을 이용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버스(309, 403, 609, 649, 840, 939, 990, 991)를 타고 방천시장(김광석 길) 앞 정류장에서 내리거나 대구 지하철 2호선 ‘경대병원 역’ 3번 출구에서 내리면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다.


대구 근대골목투어 2코스를 2시간 쯤 걷고 다시 이동하여 김광석 거리를 천천히 둘러 보고점심을 먹고 즐기는데는 모두 4시간 안팎이면 충분하다.


이 길은 대구에서 태어난 가수 김광석을 추억하고 근처 오래된 전통시장인 방천시장을 되살리기 위해 행정기관과 시장 상인, 예술가들이 뜻을 모아 2010년 처음 만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작은 사진전이나 영화음악제가 열리곤 했지만 이제는 김광석을 추모하고 그의 탄생을 기념하는 콘서트가 연중 펼쳐지고 있다. 2014년 270석 규모의 야외공연장을 만들었고 최근에는 이 골목에 방송 스튜디오가 들어서 매주 토요일 라디오 생방송을 진행한다. ‘김광석 길’을 찾는 이면 누구나 이곳에서 길거리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고 따라 부르며 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추억에 빠져볼 수 있다.


김광석 길 하면 뗄 수 없는 곳이 바로 옆에 붙은 방천시장이다. 방천시장은 해방 후 고향을 찾은 사람들이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방천 가에 난전을 벌인 것이 시초다.


1960년대에는 쌀집이나 떡집으로 유명했고 한때 점포수가 1천개를 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곳도 한 때 쇠락의 길로 접어들기도 했다. 곧 사라져버릴 것만 같던 방천시장에 2009년 보헤미안 같은 예술가들이 찾아들어 신선한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빈 점포에 예술가들이 입주하기 시작했고 이들의 손길을 거쳐 시장 간판이 아름답게 바뀌었다. 시장 간판과 벽면에는 예술가들 작품이 걸렸다. 아틀리에와 갤러리가 들어서고 공방, 스튜디오, 카페가 생겨나는 등 종전의 전통시장에서는 볼 수 없던 광경이 봄꽃이 다투어 피어나듯 계속 피어났다. 게다가 벼룩시장이 열리고 시낭송회도 잇따랐다.


하루 벌이가 고달팠던 시장 상인들이 처음에는 예술이 밥 먹여 줄까 의구심을 품었지만, 새롭게 바뀐 시장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차츰 늘자 웃음과 활력을 되찾았다. 활기찬 사람들의 웃음 속에 예술이 꽃 피고 덩달아 시장도 살아났다. 그렇게 시장을 탈바꿈한 예술가들이 김광석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방천둑길 벽화를 꾸미기 시작했다.


이들은 ‘사랑’ ‘세대공감’ ‘희망’으로 테마를 나누고 김광석의 생애, ‘서른 즈음에’, ‘이등병의 편지’, ‘일어나’와 같은 김광석의 대표곡들을 활용해 예술가들은 각자의 개성을 발휘하여 벽화에 김광석 생애와 노래를 나름대로 표현했다.


김광석 길에는 벽화와 음악만 있는 게 아니다. 방문객 사연을 받는 ‘사랑의 우체통’, 소원을 빌 수 있는 벽, 예쁘게 사진이 나오는 포토 존, 김광석의 형상을 딴 조형물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꽃과 기념품을 살 수 있는 가게가 있고 카페와 달콤한 과자 가게도 있다.


길을 걷다 출출하면 방천시장 안 소문이 자자한 고기 구이집을 비롯한 갖가지 음식점과 호프집을 찾으면 된다. 달콤한 과자 가게, 커피집부터 생맥주와 치즈떡 도그를 파는 ‘로라 방앗간(053-427-7357)’ 대구의 특미 막창을 맛볼 수 있는 ‘대구막창(053-422-1033)’연탄불에 구워주는 ‘방천 소갈비(053-253-2480), 숙성 한우의 맛을 즐기려면 ‘대한 뉴스(053-423-3990)’ 등 맛있는 집이 즐비하다.


김광석 노래를 찾는 많은 이들은 그의 음악이 지친 마음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운 사람이 그리운 날’엔 대구에 들려 ‘김광석 그리기 거리’를 찾아보자. 그의 노래가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이 필요한 날엔 김광석 길을 거닐어보는 건 어떨까!


 


대구 근대 골목길 투어


대구의 골목길 투어는 모두 다섯 개의 코스가 있다. 골목길 투어는 제1코스 경상감영 달성길부터 제5코스 남산 100년 향수 길까지 모두 5개 구간으로 나뉜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건 제2코스 근대문화골목이다. 길이는 1.7㎞에 불과하지만 예스런 건물이며 골목길이 하나의 자연스런 노천박물관을 이루고 있어 근대 골목 길 투어 코스는 제대로 보려면 2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여행코스는 청라언덕~90개의 계단으로 이뤄진 ‘3·1만세운동길’~계산성당~이상화 고택~서상돈 고택~약령시~(구)제일교회~영남대로~종로~진골목~미도다방으로 이어지는 1.7km 코스다. 여기에서 다시 택시로 이동, 방천시장 김광석 거리로 가서 ‘김광석을 다시 그리기’길을 한 시간 쯤 여유롭게 산책하고 식사까지 하면 4~5시간 쯤 소요된다.


높은 담 벽을 끼고 이어지는 350m 정도 쯤 되는 골목이 지난 2009년 가수 김광석의 벽화를 그려 넣은 골목으로 탈바꿈한 건 쇠락해가는 방천시장을 살리기 위해 문화를 덧입히는 사업의 일환이었다. 벽에는 지난 1996년 1월 22일 애잔하게 생을 마감한 가수 김광석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김광석의 트레이드 마크할 할 그 특유의 웃음을 짓는 모습에서부터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있고, 생전에 나이 사십이 넘은 뒤에 갖고 싶다던 심지어 오토바이를 탄 모습도 있다. 허름한 미용실과 대장간을 끼고 있는 골목 담 벽에 포장마차의 주인으로 그려져 오가는 이들을 맞이하기도 한다.


화려한 청춘이 아니라 ‘시대의 고통’으로 젊은 날을 추억하는 40∼50대들을 따뜻한 노랫말로 위무했던 김광석은 죽어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서고 있다. 시간 속에 파묻혀 잊어질 것 같았지만,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청춘이 잊어질 리 없듯이 그의 존재는 해가 갈수록 점점 또렷해지고 있다. 주말 김광석 길을 나서면 5060세대가 아니라 의외로 20대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김광석의 ‘이등병 편지’나 ‘서른 즈음에’를 흥얼거리며 그 길을 오가며 벽화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원래 이 길은 처음부터 ‘김광석 길’로 확정된 건 아니었다. 당초 옹벽에 그려질 벽화의 주인공으로 가수 김광석과 함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야구선수 삼성의 양준혁이 물망에 올랐다. 김 전 회장은 6·25전쟁 당시 방천시장에서 신문배달을 했던 인연이 있었고, 양준혁 선수는 방천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부모님과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들 세 명이 후보가 올라와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겨우 6살까지 밖에 이 골목에 살지 않았던 김광석의 이름을 딴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되었다. 한국 최초로 대중가수의 이름을 붙인 유일한 거리가 탄생한 것이다.


전국 유일의, 대구만의 색깔을 가진 ‘김광석 그리기 길’은 2014년 4월 ‘한국관광100선’ 선정에 이어 지난 해 ‘2015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선정되어 대구시민들은 자랑으로서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가곡 ‘동무생각(思友)’의 청라언덕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회갑을 넘기거나 칠순을 넘긴 대구지방의 여고 동창들이 모이면 으레 부르는 추억의 노래가 바로 이 ‘동무 생각’이다.


이 노래는 당시 마산여고 국어 교사였던 이은상 선생이 가사를 쓰고 계성학교 음악 선생이었던 박태준 선생이 1922년에 작곡한 것이다.


가사 속에 두 번이나 등장하는 ‘청라언덕’은 대구 도심 한복판에 있는 작은 언덕이다.


‘청라(靑蘿)’는 ‘푸른 담쟁이’(담장이 덩굴,Ivy)의 한자어 표현이다.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며 작곡가의 젊은 가슴을 울렸던 담쟁이는 이제 대구를 대표하는 상장적인 식물이 되었다.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간 담쟁이덩굴을 보면 뭔가 잊지 못할 추억이 떠 오르는 듯한 고풍스러운 느낌을 받는다.


대구에서도 담쟁이덩굴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 바로 이 곳이다. 청라언덕에서 출발하는 ‘대구 근대골목 투어’다. 100년 안팎의 근대 건축물 사이로 난 좁은 골목을 따라 걷는 길이다. 흔히 이 지방 사람들이 ‘대구의 몽마르트르’로 불리는 청라언덕엔 19세기 말 선교사들이 살던 서양식 주택 3채가 담쟁이덩굴로 덮인 채 아직도 옹기종기 모여 있다.


청라언덕을 출발하여 계산성당을 향해 난 ‘3.1만세 운동길’ 제일교회 신관 왼쪽에 계산성당을 향해 내려가는 골목이 있다. ‘3·1 만세운동길’이다. 골목길 벽을 보면 20세기 초 대구 시내 전경사진과 3·1운동 당시의 장면 등이 전시돼 있다. 1919년 당시 청라언덕 주변에 있던 계성학교 학생들이 이 골목을 지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내로 집결했던 길이다. 이 길을 걷다 보면 당시 대구의 전경이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 파노라마처럼 아련하게 추억 속으로 펼쳐진다.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진 음악다방과 ‘계산성당’이 잇따라 나온다. 이 성당은 한국근대사의 역사적 인물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1950년 12월 이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으로 종교에 관계없이 전 국민의 추앙을 받은 김수환 추기경께서 1951년 바로 이 계산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성직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계산성당 성당 뒤편의 모퉁이를 돌면 오른쪽에 이상화·서상돈 고택과 ‘계산예가’가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저항시인 이상화는 1939년부터 1943년 작고하기 전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고택에는 이상화 선생의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다. ‘계산예가’는 깔끔한 한옥형태로 지은 근대 체험 전시관이다. 그리고 대구에 처음 들어선 개신교회인 옛 제일교회도 있다. 약령시 한의약박물관과 100여 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진골목(긴 골목이란 뜻의 대구 방언)’을 지나 ‘미도다방’으로 이어진다. 미도다방은 방문객의 휴식처가 되어주는 전통다방이다. 미도다방은 사라져가는 전통다방의 원형을 그대로 지키고 있어서 많은 장년층들과 예술가들이 방문한다. 한때는 유학자들이 많이 방문해 ‘양반다방’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최근에는 장년층뿐만 아니라 젊은 관광객들도 전통다방을 경험해보기 위해 많이 찾고 있다. 청라언덕을 출발 미도다방까지 2시간 남짓 근대화 골목 투어를 마친 다음 방천시장으로 가서 ‘김광석 거리’을 구경하고 맛 집에 들려 천천히 먹고 나면 4~5시간쯤이면 대구 나들이가 끝난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친구가 그리울 때, 문득 그리운 사람이 그리울 때 푸른 하늘처럼 그리운 사람이 보고플 때


‘그냥’ 대구로 가는 열차를 타자. 훌쩍 떠나는 여행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고 깜박 잊고 살았던 지난날의 우리 청춘을 만나러 가자. 청춘을 찾으러 대구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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